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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하일기에 심취하다
이름 spring4

 

 

 

 

 

 

   연암 박지원은 18세기 사람이다. 300여 년 전 사람의 글을 우리는 학창시절에 무한 반복하며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열하일기라는 제목에만 큰 비중을 두었지 그 내용의 세세함에는 문외한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호질, 양반전 등의 내용을 조금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런 미약한 관심이 있었을 뿐이지만, 그를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 일컬으며 그에 대한 연구와 찬사가 지대함을 접할 때면 내 관심의 폭은 저절로 커지곤 하였다.

 

며칠 전 책꽂이를 정리하려니 문득 눈에 들어오는 책의 제목이 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이라는 책이었다. 언제 사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책 출판연도를 보니 2004년 도였다. 책은 새 것 그대로였는데 책 위의 가지런한 먼지는 ‘나 읽지 않았어요’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읽기를 작정하고 책을 펼치니 작가의 프롤로그만 장장 14p에 달했다.

 

그런데 그 프롤로그부터 흥미를 유발하며 책 읽기에 끌어들이고 있음에 반갑기 그지없었다. 읽는 내내 이 책은 고미숙이라는 작가의 박지원에 대한 논문처럼 느껴졌다. 아니면 평전이라고 함이 옳을까. 연암의 출생부터 체질,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증과 함께 세세한 분석을 해 주고 있었다. 그동안 ‘박지원의 열하일기’ 이렇게 묶음으로만 알고 있었던 내 의식에 새로움과 함께 뿌듯함으로 채워지기 시작하니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한문학의 최고의 문장가라 일컫는 연암 박지원, 그는 노론의 맥을 이어받은 좋은 가문 출신이다. 그런 그가 우울증을 앓았단다. 그는 과거를 포기한다. 과거에 응시하기만 해도 발탁을 해 주려고 벼르고 있는데, 그는 백지 답안을 내거나, 괴암과 나무를 그려내곤 하며 과거를 포기한다. 그 대신 그는 저자거리에 나가 시중의 모든 이야기들을 듣고 느낌을 글로 표현한다. 글의 가치나 예술성을 헤아리기 보다는 그 글에 내포된 뜻의 깊이가 깊으니 모두들 그를 동경한다. 그 동경심은 아마도 자신들을 대신 해주는 그런 통쾌함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연암은 늦은 나이에(44) 청 황제 70세 축하 사신단에 끼어 연경을 향하지만 그는 문무백관이 아닌, 요즈음의 말로 표현하면 아무 소속 없이 자유의 몸으로 따라간다. 사신단이 처음 목적지인 연경까지만 갔었다면 열하일기는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청의 황제가 마침 그 때 열하에 휴가차 떠나 있었던 것이다. 죽을 고생을 하며 연경에 도착했지만, 또다시 급히 열하로 출발했어야 하는 일행이었다.

 

그렇게 다시 나흘을 걸어 도착한 열하의 모습은 연암에게 기이한 세계처럼 보였음이다. 중국을 다녀온 사람들에 쓰인 연행기는 많았지만 열하는 처음이었다. 만수절 행사에 참가한 각 국의 사람들과 풍경, 동물들을 대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유교를 섬기는 나라의 백성이 티벳불교를 접한 생생한 이야기며, 코끼리라는 동물을 본 느낌들에 대한 기록은 단순한 글이 아니었다. 보이는 것 하나하나의 원리를 이해하려하고 그에 기록을 남기려는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지금에 이를 수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음에 참으로 자랑스럽다. 그래서 고전이라 칭하며 귀히 여기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의 보고라 일컬음에 부족함이 없음이다.

 

연암의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과 표현력은 감히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끌어 낼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는가 하면, 기막힌 통찰력으로 이야기에서 철학을 이끌어 낸다. 한 사물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통찰력에 압도당하고 만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재치 있는 유머로 글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수많은 책을 접한 지식으로 글을 써 나감은 취미라 하였다. 진정한 글쓰기는 모든 것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풀어내는 일이며 연암은 이에 정통함을 일깨워 준다. 인문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왜 그렇게 연암의 연구를 계속하며 그의 모든 글들을 풀어내려 노력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역사는 언제나 되풀이 된다 하였다. 과거를 경험삼아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를 꿈 꿀 수 있는 기록이라 하였다. 봄의 새싹과 여름의 초록이 있어야만 가을의 열매를 만나 듯, 역사는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 속의 인물을 만나 오늘의 나를 비추어 볼 수 있다는, 또 그렇게 거울이 되 줄 수 있는 선조들이 계시다는 것에 참 으쓱해진다.

 

살아가며 만나는 마음 흔적들을 끼적여 보려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닫게 해 준 책 읽기였다. 동시에 좋은 글쓰기란 어떤 자세인가를 조금은 배워본 그런 책읽기였으니 두루두루 유익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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