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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경에서의 마케터 생활 접고 양평 서종에 빵집 차린 긴즈버그 오너셰프 `조진용`
이름 이근영
100세 시대에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지겹기 짝이 없는 세월이기도 하다. 누구나 때로는 전직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최근 양평에 ‘긴즈버그’라는 천연효모 빵집을 차린 조진용 씨의 케이스는 ‘무언가 새로운 일을 구상중인 사람’들에게 꽤 쏠쏠한 모범답안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신체성(身體性, Embodimemt)’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의 단어다. 몸을 이용해서 무언가 일을 하는 것, 두뇌가 시키는 일을 몸이 수행하는 것이 아닌, 몸이 하는 일 덕분에 정신이 편안해지는 것. 3년 전 조진용 씨는 일본 동경에서 안드로이드 계열의 터치 단말기를 기획, 아예 제작과 납품까지 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마케터로서 ‘이런 제품을 적용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을 뿐인데, 클라이언트가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기획을 했고 생산을 위한 한국 업체를 선정해서 관리했고 납품까지 맡았다. 성과는 좋았다. 제안의 규모보다 덩치가 큰 역제안이 왔고 그만큼 돈벌이도 좋아졌다. 그리고 매우 바빠졌다.

천연효모 빵집 주인의 좋은 예

그 즈음 키워드 하나가 조진용 씨를 자꾸 건드렸다. 조진용 씨 같은 정신노동자들의 예민한 영혼을 쓰다듬어주는 여러가지 방법 가운데 ‘신체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는 ‘반죽’을 생각했다. 흙을 반죽해 도자기를 만들까?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만들어 볼까? 토요일이었다. 그는 지유가오카(自由が丘)의 한 빵집 스튜디오에 서서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했다. 신체의 모든 모세혈관과 잔근육들이 오직 반죽이라는 신체 행위 하나에 몰입되는 느낌이었다. 두뇌의 활동은 거의 정지 상태에 다다랐다. ‘신체성’이라는 게 이런 건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터치 단말기 사업을 진행하고, 주말이 오면 반죽과 맛있는 빵집 순례를 하는 동안 세월은 또 무심하게 흘러갔다. 요요기에 갔다. 역시 빵집 순례의 일환이다. ‘르뱅(Levain-효모)’이라는 권위있는 빵집이었다. 르뱅의 주인은 교사로 일하다 나가노현에 르뱅을 차려 천연효모를 개발하고 반죽을 만들어 빵을 팔았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책도 여러 권 냈고 천연효모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멘토로 활동하는, ‘천연효모 빵집 주인의 좋은 예’가 되어 있다. 요요기는 르뱅의 도쿄 지점이다. 조진용 씨는 르뱅에서 빵을 먹으면서, 그의 족적을 배우면서 ‘아, 나도 3년 뒤에 꼭 천연효모 빵집을 내야지’라고 결심했다.

그해, 2010년 10월에 회사를 그만 뒀다. 신체성의 수축 작용이 정신성을 그의 몸에서 밀어낸 것이다. 11월에 한국에 왔다. 양평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양평행이 아니었다. 시골에 빵집을 내기로 한 것은 이미 결심을 했던 터였고, 두물머리가 있는 양평이 그를 당겼고, 그가 양평이 부르는데로 그렇게 좇아간 것이다. 서종리에 집을 얻어 입주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한 일은 입주였고, 두번째로 제주도 여행을 했다. 세번째는 일본 천연효모빵집 여행. 이번에는 큐슈와 도쿄를 돌았다. 거기서 유럽의 천연 효모빵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곧장 프랑크푸르트, 뮌헨, 런던, 헬싱키의 빵집들을 돌았다. 먹어보았고, 말을 걸었고, 배우고 나누는 아찔한 여행길이었다. 런던의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의 시인이자 비트 제네레이션의 최정점에 있는 알렌 긴즈버그(1926~1997)의 책을 읽고 즉시 그를 자신이 만들 빵집의 멘토로 옹립, 가게 이름도 긴즈버그로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빵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인데, 당장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니 알렌 긴즈버그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그에게 마치 복음 같은 위안이 되어준 것이었다. 멀리, 깊이 몰입한 결과이기도 하다. 일이라는 게 그렇다.

빵집 ‘긴즈버그’ 탄생

그게 2011년 봄이었고 귀국 후 여름 내내 효모 만들기부터 반죽, 빵 굽기 등등 연습을 했고 9월에 가게를 얻어 10월에 디자인을 시작했다. 인테리어와 주방 시설 조합이 끝나자 12월 말에 가오픈,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불러 평가를 받았고 반응은 대성공이었다. 긴즈버그 오픈을 위한 마루타 프로모션에 참여한 그의 친구들은 기본이 10년 친구, 길게는 초등학교 동창까지 포함되었다. 천연 효모 배양 시간이 그런 것처럼, 그와 친구들의 관계 또한 세월을 따라 숙성에 숙성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다. 정식 오픈은 1월 4일이다.

조진용 씨는 건포도와 호밀을 주원료로 천연 효모를 만든다. 두 가지를 혼합한 효모를 넣어 반죽한 빵으로는 식사용 빵을 굽고 간식용 빵은 건포도 효모만 사용한다. 자신이 개발한 효모에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 때문에 감성이 풍부하고 낭만적이며 커뮤니케이션 비즈니스를 해온 사람다운 발상이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가 지은 효모의 이름도 ‘긴즈버그’다. 그의 효모 ‘긴즈버그’가 자라고 있는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주민들은 이 새로운 빵집(어떤 이는 햄‘버그’집으로 오해)의 출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픈하기도 전에 빵을 사러 오는가 하면, ‘아직 공식 오픈을 한 게 아니’라고 설명해도, ‘그 안에 있는 빵’(시뮬레이션을 위한 제품이지만 결국 나중에 똑같은 제품으로 팔게 될)은 무엇이냐며 기어이 원하는 빵을 사가기도 한다.

양평군 서종면은 또한 서울의 강남을 사업 기반으로 하는 ‘호사가’들이 꽤 많이 들어와 사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의 촉이 ‘긴즈버그’를 놓칠 리가 없다. 하여 미식 트렌드세터들의 출입도 잦아지고 있다. 조진용 씨는 자기가 만든 천연 효모 빵을 먹는 사람들의 마음이 빵처럼 둥글둥글해졌으면 좋겠다는 일단의 소망을 말했다. 효모가 자라듯 매사 천천히 자연의 순리대로 살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마치 빵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는 듯 하다. 그의 꿍꿍이 속에는 무언가 더 많은 미래가 있는 것 같지만 묻지 않았다. 그 모든 미래는 바로 그의 생애 최초의 빵집 ‘긴즈버그’를 이용하는 양평군 서종면 사람들의 평가와 반응에 달렸기 때문이다.

[글과 사진 = 이영근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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