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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땅 모양 그대로 지었죠"… 오빠집은 오각형 동생집은 삼각형
이름 관리자

용산 전쟁기념관 설계한 이성관씨의 단독 주택 '수입 777' '반포 577'
"설계만 좋다면 얼마든지 대지 제약 극복하고 쾌적한 집 지을 수 있어… 내가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단독주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여전히 불편하고 오래된 집 아니면 호화로운 전원주택이다. 일반인들이 제집으로 실현하기엔 아직 거리가 있어 보인다. 건축가 이성관(63·한울건축 대표)씨가 설계한 자신의 집 '수입 777'과 여동생을 위해 설계해준 '반포 577'은 단독주택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는 힌트 같은 작품이다. 두 집은 경기도 교외와 서울 도심이라는 입지 차이는 있지만, 좁고 불규칙한 대지 모양을 최대한 살려 지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씨는 "집은 양념이 잔뜩 묻은 자극적인 음식이 아니라 오래 숙성된 묵은지 같은 건축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탄허(呑虛)기념관 등을 설계했다.

오각형 땅 모양 살린 오빠 집

이씨의 집 '수입 777'은 경기도 양평군 수입리에 있다. 암호 같은 이름부터 눈에 띈다. "집 자체보다 그것이 놓인 장소를 강조하기 위해 번지수를 건물 이름에 썼다"고 했다. 동생 집 '반포 577'도 동네 이름에 담백하게 번지수를 붙인 것이다.

이씨도 한땐 아파트 주민이었다. 2003년쯤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 대상이 돼 이사를 해야 했다. 이사를 생각하니 맨 먼저 떠오른 게 자식처럼 기르던 개 8마리(지금은 19마리로 늘어났다)였다. 그래서 "개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각 층 사이를 최대한 개방해 목소리가 1층에서 3층까지 닿게 했다”는 건축가 이성관씨.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북한강 근처에 사둔 땅에 집을 짓기로 했다. 설계 과정의 가장 큰 난관은 불규칙한 오각형의 대지. 고심 끝에 이씨는 밋밋한 네모 건물을 지어 주변에 자투리땅을 남기느니 차라리 집터 모양을 최대한 살리기로 했다.

해법은 직사각형 상자 2개가 V자 모양으로 겹친 독특한 형태의 건물. 박스 2개가 이루는 건물의 외곽선이 오각형 대지의 윤곽과 거의 일치한다. V자의 홈 부분은 케이크 한 조각을 잘라낸 자리처럼 삼각형 모양으로 비워 작은 중정(中庭)을 마련했다. 대지 면적 222㎡(67평), 건물 면적 125㎡(37평)이다.

부부의 생활공간 외에 사진작가인 부인의 작업실까지 마련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씨는 "3개 층으로 늘려 공간을 확보하되, 각 층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최대한 개방해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1층에서 3층까지 전달되도록 했다"고 했다. 보통 주택에서 3.3m 정도인 층고(層高)도 2.85m로 줄여 주변에서 이 집만 우뚝 솟은 듯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 이 집은 2005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불규칙한 오각형의 대지 모양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이성관씨가 선택한 해법은 직사각형 박스 2개가 V자로 맞물린 형태였다(아래쪽 모형 참조). V자의 홈에 해당하는 부분은 건물로 둘러싸여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활용 가능한 마당으로 쓰인다. /한울건축 제공
집 안에 들어서면 앞마당 너머 북한강이 보인다. "강변의 집에서는 늘 똑같은 강이 보인다. 하지만 마당 뒤로 물러앉은 집에서는 계절 따라 마당이 변해 가는 모습이 함께 보인다." 이씨는 "잠시 머무르는 카페라면 순간적으로 감탄사를 유발하는 경관으로 충분하지만, 오래 머물러야 하는 집은 두고두고 즐거움과 편안함을 줘야 한다"고 했다.

삼각형 좁은 땅의 동생 집

이씨의 여동생 성란(59)씨의 집 '반포 577'은 '수입 777'을 본보기로 해서 지었다. 아파트·빌라에 줄곧 살면서 늘 '마당 있는 집'을 원했던 성란씨가 오빠의 집을 보고 설계를 부탁했다. 여동생은 "오빠의 집을 보며 꼭 넓은 땅이 아니더라도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서울 반포동의 버려진 땅을 구입해 설계를 부탁했다"고 했다.

여동생이 구입한 땅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길쭉한 삼각형 모양에 넓이는 157㎡(48평) 정도였다. 게다가 도로보다 3m쯤 높은 축대 위에 있어 버려진 공터나 다름없었다.

삼각형 부지라는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세모 집’이 나왔다(아래쪽 모형 참조). 공원과 접한 부분을 사각형으로 비워 동생의 마당 딸린 집 바람을 실현했다.
동생의 의뢰를 받은 오빠는 땅 모양을 최대한 살려 삼각형 집을 지었다. 축대 부분을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그 위에 4층으로 생활공간을 마련했다. 부지의 제약을 극복한 이 집은 2009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과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서리풀공원과 접한 남쪽으로는 21㎡ 정도를 비워 중정(中庭)으로 썼다. 이성관씨는 "공원의 녹지를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며 "공원 산책로와 만나는 부분에는 반투명 가림막을 설치해 햇빛은 통과시키면서도 주변의 시선은 차단했다"고 했다. 공원 방향의 남쪽을 개방하는 대신 주변 다가구주택과 마주 보는 다른 방면에는 최소한의 창문만 남겨 집주인과 이웃의 사생활을 보호했다.

이 집의 건물 면적은 84㎡(25평)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란씨는 "집이 좁다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고 했다. 내부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벽을 줄이고, 문도 좀 크게 만들어 문을 열면 벽 자체가 열린 듯한 느낌이 들게 해 개방감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좋은 설계가 따른다면 대지의 제약을 극복하고 쾌적한 생활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이씨의 건축 철학이 이 집으로 실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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